침벌 중에서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이 꿀벌과 말벌이다.
꿀벌은 양봉을 통해 사람에게 비교적 순화되어 있지만, 말벌은 그야말로 야생의 벌이라고 할 수 있다.
말벌은 꿀벌처럼 꿀이나 꽃가루를 모으지 않는다. 나무 수액을 핥거나 과일즙을 빨기도 하지만, 말벌은 기본적으로 사나운 육식성 곤충이다.
다른 약한 곤충을 습격하여 큰턱으로 잘게 씹어 곤죽을 만들며 이것을 집에 가져가 자기 애벌레에게 먹이거나 음식으로 나눠 먹는다.
말벌 몇 마리가 양봉하는 곳을 습격하여 벌집을 통째로 전멸시키는 일도 많다.
이들 말벌은 강한 독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특히 눈에 잘 띄는 노랗고 검은 대조적인 줄무늬 색상을 띤다.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는 호전적인 습성을 가진 벌 무리는 모두 말벌과(Vespidae)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말벌은 약 20종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말벌, 땅벌, 그리고 쌍살벌이라고 부르는 벌들이 말벌과에 속한다.
말벌에 있어 가을은 번식철이다. 벌집이 최대로 커지며 이전까지 없던 수벌이 나타난다.
벌들의 세계에서 수벌은 오로지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사실 사람을 공격하는 침을 가진 것은 모두 암컷이다.
수벌은 생김새는 비슷해도 산란관이 없으므로 사람을 쏘지 못한다.
수벌은 가을철에만 잠시 나타나 짝짓기를 마치면 겨울을 나지 못하고 이내 죽고 만다.
이 시절에 짝짓기를 마친 암컷 여왕벌만이 살아남아 겨울을 나고 이듬해 한 마리의 여왕벌로부터 세를 불려 하나의 ‘여인 천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말벌 사회에서 우리와 만나는 대부분의 벌은 암벌이면서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는 일벌들이다.
그렇다면 말벌은 왜 사람을 쏘는 것일까? 이런 공격성은 야생의 천적으로부터 자기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즉 곰이나 오소리 같은 동물들이 벌집을 자주 습격하여 꿀도 훔치고 벌의 애벌레들을 잡아먹는데, 강한 호전성으로 이런 동물들에 대적해 온 것이다.
두꺼운 털가죽으로 덮인 곰 같은 동물은 벌의 침에도 웬만해서는 꿈쩍하지 않는데, 말벌은 털 속을 파고들어 침을 쏜다.
물론 이때 벌들은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것이다.
한 마리의 벌이 희생되더라도 벌집에 남아 있는 많은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벌들은 자기를 기꺼이 희생한다.
꿀벌의 침에는 미세한 미늘 모양의 갈고리가 있어 한 번 쏘면 피부에 박혀 다시 회수되지 못하고 벌의 배 밑이 빠져 죽고 만다.
그러나 말벌의 침은 매끈하므로 얼마든지 들락날락하며 계속해 침을 쏠 수 있어 더 독하다.
성묘철에 벌의 피해를 많이 입는 이유는 벌집이 볕이 잘 드는 무덤가에 많기 때문이다.
봄철의 벌집은 여왕벌 한 마리가 만들어 크기도 작고 눈에도 잘 띄지 않지만, 여름을 거치며 일벌이 늘어나면서 벌집은 점점 커져 가을에 최대 크기로 자란다.
밀랍 성분의 꿀벌 집과 달리 말벌의 집은 나무껍질 등을 갉아 침과 반죽하여 만든 펄프 성분이다.
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이나 폐가의 지붕 밑, 또는 절벽의 바위 아래에 벌집이 많은데, 땅속의 빈 구멍에도 집을 잘 짓는다.
땅속에 있는 벌집은 특히 눈에 잘 띄지 않아 주의해야 하는데, 벌초 시 예초기를 돌리면 그 진동으로 땅속의 벌들이 놀라 쏟아져 나오게 된다.
벌초 작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을 살펴보고 벌들이 드나드는 구멍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가을이 지나 번식이 끝나면 말벌 집은 대개 그냥 버려진다.
매년 새로운 집을 만들기 때문에 텅 빈 집은 그냥 처마 밑에 매달려 있고 여왕벌은 안전한 월동처를 찾아 주로 쓰러진 나무 밑을 파고들어 숨는다.
벌과의 마찰이 증가하는 것이 과연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벌을 잘 알고 각별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